[성명서] 재난상황 보도에서 농인의 ‘정보접근권’과 ‘언어권’을 보장하라!
[성명서] 재난상황 보도에서 농인의 ‘정보접근권’과 ‘언어권’을 보장하라!
  • 박지원 기자
  • 승인 2020.02.28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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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국가인권위원회 긴급성명서 발표
- 정부 브리핑 화면에 수어통역사 넣지 않는 방송사 많아
- 한글 자막은 농인들에게 정보 제공하는데 한계 있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열린 정례브리핑 중 수어통역사가 김진곤 대변인의 설명을 통역하고 있다. ©News1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열린 정례브리핑 중 수어통역사가 김진곤 대변인의 설명을 통역하고 있다. ©News1

[소셜포커스 박지원 기자] = 28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재난 상황을 보도하는 정부 브리핑 화면에 수어통역사가 항시 배치될 수 있도록 하는 긴급 성명서를 발표했다.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재난 상황에서 KBS와 연합뉴스 TV를 제외한 대부분의 방송사들이 화면에 발표자와 수어통역사를 동시에 배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권위는 “방송사들이 발표자의 발언을 자막으로 제공하고 있지만 농인에게 한글 자막은 모국어가 아닌 제2외국어나 다름없다”며 농인들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기엔 불충분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감과 불안감은 농인도 예외가 아니다”면서 "정보 접근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사회 약자가 재난 정보를 동등하게 제공받을 수 있도록 추가적인 편의를 제공하라"고 촉구했다.

긴급성명서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재난상황 보도에서 농인(聾人)의 ‘정보접근권’과 ‘언어권’ 보장을 위한 국가인권위원장 긴급 성명

- 많은 방송사들이 정부 브리핑 뉴스 화면을 송출하면서 수어통역사를 화면에 담지 않아 -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대한민국의 공식 공용어로서의 한국수어를 존중하고 재난 상황에 대한 농인(聾人)들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문화방송(MBC), 서울방송(SBS), YTN 및 여러 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이 정부가 수어통역사와 함께 실시하는 공식 브리핑에 대한 뉴스 화면 송출시 반드시 수어통역사를 화면에 포함시킬 것을 촉구하기 위해 성명을 발표합니다.

* 농인(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청인(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과 대응하는 개념으로, 대한민국의 공식 언어인 수화언어(수어)를 모국어로 하는 언어적 소수자입니다. ‘청각장애인’과 같은 사람들일 수는 있으나 개념적으로 다릅니다. 청각장애인은 장애인 복지 서비스 대상자로서의 지위를 강조하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감염병이 급속히 확산되고 그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 위기감과 불안감은 성별이나 장애를 초월하여 모든 개인이 갖고 있습니다. 농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런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 정부의 공식 브리핑이 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과정에서 KBS와 연합뉴스TV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방송사들은 발표자 바로 곁의 수어통역사를 제외하고 발표자만 클로즈업 한 화면을 송출하고 있습니다. 재난 주관방송사로서 KBS는 정부 브리핑뿐만 아니라 뉴스 방송 전 과정에서 추가 수어 통역을 제공하고 있으며, 연합뉴스TV도 비록 방송사만의 별도 수어 통역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으나 정부의 공식 브리핑 상황 송출 시 정부가 직접 대동한 수어통역사를 발표자와 같은 앵글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의 전국적 확산 국면에서 매일 수차례 이루어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 정부의 공식 브리핑은 개인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핵심 정보라는 점에서 해당 재난에 직간접의 영향을 받는 개인에게 단 한 명의 열외자도 없이 모두 전달되어야 합니다. 정보접근권은 성별이나 장애 등 그 어떤 이유로도 구분함이 없이 동등하게 향유되어야 할 기본권이며, 특히 재난 상황에서의 정보란 다른 그 어떤 정보보다도 개인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금지와 인권의 원칙이 더욱 더 엄격하게 적용됩니다.

이런 이유로, 국가는 일상에서 정보접근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는 여러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가 재난 관련 정보를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편의를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정부가 최소한 공식 브리핑에 있어서만큼은 수어통역사를 배치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부의 브리핑을 송출하는 각 방송사들이 수어통역사를 배제한 채 뉴스 화면을 편집하는 관행이 지속되면서, 수어통역사를 배치한 정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있습니다. 비록 방송사들은 발표자의 발언 내용을 자막으로 시각화 하고 있지만, '한글'은 농인들에게는 모국어가 아닌 제2외국어나 다름없는 문자이므로, 농인들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는 충분한 대체 수단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2016년 2월 6일 제정되고 8월 4일부터 시행된 「한국수화언어법」 제1조는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로 시작합니다. 한국수어는 한반도에서 한국어가 발전해 온 수천 년의 역사를 모두 공유하는 이 땅의 고유 언어이고,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갖는 유일한 공용어입니다.

정부가 직접 제공하고 있는 수어 통역이 한국어 발표자와 동등하게 화면에 잡히도록 촬영과 편집 관행을 개선하는 하는 일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어 긴급하게 촉구합니다.

거듭 강조하건대,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공식 공용어입니다. 수어 통역은 단순히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의제공’ 문제가 아니고, 한국어 대신 한국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대한민국 국민을 위한 법적 의무라는 점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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