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은 자신을 사랑함에서 나오는 것”
“자신감은 자신을 사랑함에서 나오는 것”
  • 김승근
  • 승인 2019.07.10 0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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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한번쯤 뜨거운 시절, 그럴 때도 있다
당연하겠지만, 작품 속에 빠져 있다 보면 그 누구도 그녀에게 청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귀가 들리지 않든 들리든 그것과 상관이 없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작품 속 풍경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여느 대학생들이 한번쯤 꿈꾸듯 나 역시 해외 연수나 어학연수를 계획해 본적이 있다. 당시 우리 학교와 결연을 맺은 외국 대학에서 ‘지원자를 받는다’라는 전단을 우연히 본 덕에, 한창 그 방법을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학과 공부만 해도 버거웠던 데다가 건강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았기에 결국,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다.

그 후, 내가 떠난 첫 외국 행선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이었다. 그곳에서 학회가 열리는데, 마침 한국에서 참가단을 선정하고 있었고, 운 좋게도 나에게 참가자격이 주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초 중 고등학교를 비롯해서 대학교 교양수업에서도 영어공부를 꾸준히 했지만 스페인이란 곳은 실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 나름대로는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 상황이 위험한지, 아닌지 알아듣고 대꾸는 할 수 있어야지’라는 생각이 번쩍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희귀하다는 파란장미 한 송이를 들고 서 있는 필자모습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희귀하다는 파란장미 한 송이를 들고 서 있는 필자모습

이렇듯 ‘언어’를 알아듣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당시 나에게 나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상태에서 떠난다면 나에게 어떤 위험한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나의 첫 외국행에 대한 웃지 못 할 일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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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은 혼자라서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무엇인가 끊임없이 피어나는 도시였다. 그렇게 나는 마음 속 깊이 런던을 사랑했었던 것 같다.”

이런 기억을 떠올리며, 이 책 <그럴 때도 있다 : 누구에게나 한번쯤 뜨거운 시절(저자 김현정)>의 저자 김현정씨를 만났을 때, 나는 그를 그야말로 ‘용기 있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그녀는 어릴 때 급성폐렴을 심하게 앓았고 그 뒤에 청력이 손실됐다. 때문에 거의 들리지 않는 귀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당하게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더구나 영어 한마디조차 못한다는 그녀는 ‘가서 배우면 되지’라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청력손실은 둘째치고라도, 건강한 사람조차 쉽지 않은 유학길, 그것도 인종차별과 배척이 강하다는 영국 유학이었다.

그녀가 품은 용기의 근원은 무엇이었던 것일까? 청력을 잃은 뒤, 상대의 입술 모양을 보고 이해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선택한 곳은 한국도 아니고 영국이었다. 더구나 영어 한마디 못한다는 그녀가 말이다.

특히, ‘영국영어’는 일반적인 영어권 국가들 중에서도 발음이 독특하고, 문법에도 특이성이 많은 언어이다. 그런 언어를 입 모양만 보고, 눈으로 배우겠다는 거다. 또 그 와중에 그녀는 ‘패션포토’ 공부까지 해냈다는 건데, 마치 그녀의 포부는 시작부터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만류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유학길을 떠났고, 10년 뒤, 그녀는 자신의 유학기를 책으로 출간하기에 이른다. 자신이 만났던 사람, 풍경, 동물, 사랑했던 영국만의 감성을 모두 담아서 말이다.

[책] 그럴 때도 있다 누구에게나 한번쯤 뜨거운 시절 (김현정 저)
[책] 그럴 때도 있다 누구에게나 한번쯤 뜨거운 시절 (김현정 저)

그렇게 돌아온 그녀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그녀는 10년간의 런던 유학을 통해,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패션사진 전문 포토그래퍼’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다. 그녀는 영국에서 찍어온 사진으로 사진전을 열었는데, 유럽 특유의 감성이 담겨져 있는 작품 사진마다 그녀의 멋진 이력과 감각적인 에피소드 노트 필기가 담겨있다. (나는 유독, 옥상 끝부분에서 길 건너편을 보고 있는 듯한 고양이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내겐 없고, 그녀에겐 있었던 그 ‘무모한 용기’는 무엇이었을까? 오히려 나에게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지만, 그녀는 세상의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낯선 영국에서 사진으로 세상과 소통했다.

“사진은 나의 기록이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보고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그 영향 받은 사진들처럼 찍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점차 나만의 방식을 찾아가게 되었고, 특정한 시각으로 내 마음을 비추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사진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감정을 그대로 담아낸다. 마치 시간을 인화지 안에 가둬버린 것처럼 말이다. 간혹 그런 사진을 보게 되면 심장이 멈춘 것처럼 경이로운 느낌을 받곤 한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녀가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영국 런던, 추적추적 내리는 비, 어둡고 검은 하늘, 냉소적이고 차가운 도시 풍경과 사람들, 내가 가진 런던의 풍경이란 대체로 이런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사진들은 내가 생각했던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two boxes_digital print_51x61_2009/ 청각장애 예술가 김현정의 개인전 'Eyes Think_I Think-그럴 때도 있다' 中
two boxes_digital print_51x61_2009/ 청각장애 예술가 김현정의 개인전 'Eyes Think_I Think-그럴 때도 있다' 中

평범한 일상, 유학생의 눈으로 바라본 그대로의 런던 모습이 있었다. 그녀의 여정을 사진으로 뒤 쫒아가 보면, 내가 이전에 생각했던 방식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런던의 모습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내 그 조용하고 평범한 일상의 모습은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당연하겠지만, 작품 속에 빠져 있다 보면 그 누구도 그녀에게 청각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귀가 들리지 않든 들리든 그것과 상관이 없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작품 속 풍경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진 속에는 열정이 담겨져 있다. 깊은 애정도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런던 생활을 하나하나를 떠올려볼 수 있는 에피소드 노트는 그녀가 얼마나 용기 있고 긍정적인 사람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누구에게나 한번쯤 뜨거운 시절, 그럴 때도 있다.’

누구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해낸 사람이기에 그 특별함은 더욱 찬란해 보인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진짜 가고 싶은 곳으로 가기 위해 ‘용기를 낸 사람’. 그런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성취감. 그리고 아우라처럼 흘러나오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듯 했다.

“자신감은 자신을 사랑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남과 비교를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그대로 사랑을 해주면서 꾸준히 공부를 해야 한다. 어떠한 것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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